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루이나 린데나우 왕조 제4대 국왕 게오르크 4세 Georg Ⅳ | |
출생 | 1762년 8월 12일 |
사망 | 1830년 6월 26일 (향년 67세)[1] |
재위기간 | |
1820년 1월 29일 ~ 1830년 6월 26일 | |
재임기간 | |
1762년 8월 12일 ~ 1820년 1월 29일[2] | |
1811년 2월 5일 ~ 1820년 1월 29일 | |
1820년 1월 29일 ~ 1830년 6월 26일 | |
인장 | |
대관식 공식 초상화 |
1. 개요 [편집]
[1] 적자 없이 사망하여 왕위는 동생 빌헬름 4세에게 넘어갔다.[2] 57년 5개월로 루이나 역사상 가장 오래 왕태자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다.[3] 취향과 예법에서 당대의 기준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쓰였으나, 후대에는 그것이 그가 남긴 전부라는 반어로도 쓰인다.[4] 말년의 비대한 체구를 두고 풍자화가들이 붙인 멸칭이다. 이 시기 루이나의 정치 풍자화는 국왕을 가장 즐겨 다루는 소재로 삼았다.[5] 가톨릭 신자와의 혼인이었으므로 왕위협약에 따라 처음부터 법적 효력이 없었다. 국왕은 평생 이 혼인을 부정하지 않았다.[6] 부채 탕감을 조건으로 한 정략 혼인이었다. 두 사람은 혼인 이듬해부터 별거했고, 1820년 국왕이 즉위 직후 이혼 법안을 추진했으나 여론의 반발로 철회했다. 왕비는 대관식 당일 대성당 문 앞에서 입장을 거부당했다.[7] 유일한 적녀였으나 1817년 21세로 출산 중 사망했다. 이 죽음으로 왕위 계승이 다시 문제가 되었고, 결국 왕위는 국왕의 동생들에게 넘어가게 된다.[8] 끝까지 반대했으나 내각의 총사퇴 위협에 밀려 재가했다. 국왕의 거부권이 사실상 소멸했음을 보여 준 사건으로 평가된다.
